Tiny Finger Point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도 많았던 바로 그 영화, 브로커를 뒤늦게 보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은 대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환상의 빛이 그랬고, 아무도 모른다가 그랬고, 걸어도걸어도가 그랬다. 언급한 전작들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떠나간 사람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반대로 떠나야만 하는, 혹은 떠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으로 풀어내고 있다. 나름 오랜 팬으로서 이 지점은 개인적으로 참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이다. 

 

더보기

소영은 아이를 버렸으나 다시 돌아왔고, 상현은 차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봉고차의 뒤를 쫓아 앞만 바라보던 형사과 팀장 수진은 뒤에서 들려오는 후배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되감기하듯 나아가며 찾아가는 곳은 이제 3년이 지나 커버린 우성이 있는 해변가이다. 영화는 이렇듯 떠나가려는 사람들을 자꾸만 뒤로 붙잡게 만드는 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인물의 지향점이 세 번의 콩콩콩 주먹다짐으로 교차되며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더욱 단단하게 감싸안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불편한 현실을 카메라로 담으면서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힘을 믿는 감독이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만 조심스레 내보이는 진심, 밝은 곳에서만 찾게되는 희망,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대사와 장면들은 이것이 내가 알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유치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대사 없이도 뛰어난 연출을 할 수 있지만(아무도 모른다, 기적, 환상의 빛), 인물들에게 대사를 부여하면 또 굉장히 뛰어난 각본을 쓰는 감독이다(걸어도 걸어도, 파비안느에 대한 진실 등). 이번 영화에서의 실패는 감독 본인의 역량 3할, 배우의 역량 4할, 궁예로 넣어보는 배급사 씨제이의 역할이 3할쯤 되지 않을까 팬심으로 주장해본다. 

 

소위 문제가 되었던 개연성에 문제가 있다느니, 결국 인신매매범일진데 지나치게 미화했다느니, 일본 감독이 한국 배우들을 데리고 남의 나라에서 찍은 영화 치곤 너무 무례했다느니 하는 여러가지 논의들은 실질적으로 나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 특유의 영화 소재로 인해 일본내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감독이다(그는 현재의 일본에서 거의 몇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그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높게 인정받는 감독이지만 그 커리어에 비해 자국 내에서 참 찬밥 신세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는데, 일본 사회의 컴플렉스를 부각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감독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영화의 연출이 너무 유치했기 때문에 이 모든 혹평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오랜 기간 브로커를 쫓아온 두 형사는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존재한다. 수진은 미혼모를 쉽게 비난하고 재단하는 일반 대중들처럼 사고한다. 그 옆의 후배 형사(이주영 분)는 적절한 지점에서 그런 수진에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근본이 무엇인지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동수는 친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컴플렉스 때문에 소영에게 매몰차게 대하지만, 곧 그녀에게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동시에 소영은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선의'를 이 브로커 가족과 양부모를 통해 느끼며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삶의 희망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상현은 버림받은 가족 대신(각본상으로는 그냥 자업자득이다) 새로 얻게 된 가족을 더욱 소중히 하게 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단성까지 보여준다...

 

시나리오는 차치하고라도, 일본어로 쓰인 각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는데, 이런 대사들을 배우 및 조감독의 재량으로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조차도 사치였던 것 같다.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이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대배우들은 중요한 장면에서조차 연기를 너무, 너무 못한다... 심지어 송강호가 칸에서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슬프기까지 하다. 중요한 인물 중 연기를 제대로 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배두나밖에 없다. 특히, 극의 절반은 아이유가 혼자 끌어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데, 표정의 풍부함은 커녕 대사 소화 능력조차도 너무나 떨어지는 그녀의 연기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이 영화에서 아이유의 연기를 처음으로 제대로 봤는데 마지막 엔딩크레딧에 걸리는 '이지은' 세 글자가 얼마나 애처롭던지... 극 중 배역의 중요도를 봤을 때, 이 연기는 건축학개론에서의 한가인보다 더 나쁘다.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것이 맞다. 불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애정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면 그러하다. 극적으로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도, 키워나간 애정과 희망으로 인물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다만 나는 왜 미혼모는 아기를 버리고자 하면 안되는지, 엄마가 가지는 천부적인 모성애는 절대불변의 것인지 그 전제에서부터 몰입이 어려웠다. 살인을 저지른 상현이 은닉 생활을 하며 지나간 가족들을 추억하는 것은 일견 기생충의 오마주로, 배우 송강호에 대한 헌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의가 부족한 마무리 방식으로도 느껴졌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감독이지만, 그래도 한국 대중들에게 각인될 첫 영화를 이런 영화로 만들어버리다니, 팬으로서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TOP BOTTOM E